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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멍하니 / 한희철 목사님

다산바람 2012. 9. 5. 17:10

혼자, 멍하니 

한희철목사님

  지난 토요일, 목양실을 찾아온 교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갔습니다. 좁고 허름하지만 맛있는 냉면집이 있다 하여 그 집을 찾아갔지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교우가 얼마 전 나주에서 있었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그것도 잠을 자는 아이를 이불에 싸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이가 그럴 수가 있느냐며, 마치 이 사회가 발정난 개들이 사는 사회 같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범인은 범행 직전 PC방에서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애들은 잘 있느냐”며 안부를 물었고, 아이의 어머니보다 먼저 PC방을 빠져나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원래는 13살짜리 큰딸을 노렸는데 거실 안쪽에서 자고 있어 가장 바깥에서 잠자던 아이를 이불에 싼 채 안고 나왔다 합니다. 얘길 들어보면 어느 것 하나 이해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짐승도 하지 않을 일을 행한 추한 일을 두고 탄식과 비난을 하는 것이야 어느 누가 다르겠습니까만,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범인의 개인 홈피 방명록과 다이어리에는 그의 동생이 남긴 글이 유일했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창구인 미니홈피에서는 친구 관계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중퇴 이후 막노동을 전전하며 대인관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너무 일찍 사회적인 낙오자가 되고 그것을 극복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을 때, 결국은 자기만의 방에 갇히게 되고 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절망에 갇힌 이들이 답답함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들 뿐, 그것이 어느 날 표출이 되면 세상은 경악을 하고 맙니다. 
  2008년 12월 문을 연 이래 그의 홈피를 다녀간 이는 불과 천이백여 명,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지자 하루 800여 명이 홈피를 방문하여 그를 비난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가벼운 생각이라 탓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평소에 그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저를 포함한 사회의 무관심함이 크게 마음에 걸립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의 필립 짐바르도(79) 명예교수는 대표적인 상황주의 사회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선과 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인간의 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제공한다. 사람은 선과 악의 가능성, 악당이 되거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것은 사회와 교육이다.” 
  누구에게나 내재하고 있는 두 가지 가능성, 악당이 되거나 영웅이 되는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것이 사회와 교육이라는 지적에 공감이 됩니다. 경쟁에서 밀려 낙오자처럼 숨어 지내는 이들을 향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만이 유사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그만의 방에 혼자, 멍하니 두는 것은 언제라도 뒷북을 치게 하는 쉬운 변명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