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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본문

Review/끄덕끄덕

『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다산바람 2022. 5. 13. 10:24

『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3장 회복적 정의의 에토스 개괄 중 (p.103~104)

미셀 푸코(1977년)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러한 범죄 정의 역사의 진보적 해석이라는 신화적 본질을 폭로하였다. 푸코는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를 죽이려 했던 다미앵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18세기 처형의 의전적인 규정에 따라 다미앵은 고문을 당하고, 주리를 틀고, 사지가 절단되었다. 그를 죽이는 집행과정에서 말들이 그의 사지를 찢지 못하게 되자 그 과정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집행관이 개입하여 다미앵의 사지를 절단하도록 하였다. 왕의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이와 같은 집행 절차에 차질이 생기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범인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군중들이 갑자기 동정적으로 바뀔 수가 있고, 잘못하면 대중의 항의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관중들이 처벌자의 힘을 두려워 하거나 존중하기 보다, 처벌받는 사람과 동일시하기 시작할때, 이러한 처벌 장면은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이것이 18세기에 처형의 방법을 바꾸기 시작한 이유의 일부이다. 수도원, 군대, 학교 같이 다양한 기율이 필요한 기관의 선도에 이어, 정부들은 통치자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기 보다는 재교육시키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변화를 단선적이고 점차 계몽된 진보의 산물로 보기 보다는 불균일하고 일그러진 발전이라고 보았다. 푸코의 복잡한 처벌의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회복적 정의 옹호론자들은 형사 사법의 진보와 승리라는 관점과 경쟁하기 위해 너무자주 자신들만의 단순화된 역사적 서술을 들고 나왔다. 존스톤(Johnstone2002)이 비공식적인 사법 대응이 사라진 연유를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12세기 이전에는 폭력이 만연한 것이 아니라 배상과 협상이 분쟁 해결의 주요 특징이었다. 소규모 사회는 조정 해결방안을 모색하였고, 때때로 존경받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개입을통해 사회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다. 국가가 지역 사회로부터 범죄를 “도둑질”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christie(1977) 인류 역사상 거의 항상 존재해 온,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인 아주 작은 규모의 사회들은 공동체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평화적으로 원만히 해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단 국가가 특정한 잘못을 공적인 잘못이라고 선언하고 나면, 피해자들과 공동체는 분쟁 해결 과정에서 차단되었다. 그리고 이 그룹들은 공적인 심의와 창조적인 문제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박탈당했다. Braithwaite(1999) 국가의 발달과 정치권력의 집중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말하는 최초의 회복적 경향들을 보복적이며 국가중심적인 정의로 대체 시켜온 이야기이기도 하다.